칠월의 어느 밤, 그녀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떠 있었다.
우리는 겁이 났고, 그만큼 들떴다. 그녀는 이름 후보를 세 개 보냈고, 나는 네 번째를 보냈다. 서로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이름이었다. 그날 밤 그녀의 답장은 이모티콘 하나였다. 웃는 얼굴.
일주일 뒤, 그녀의 메시지가 달라졌다. 문장이 짧아지고, 단어가 낯설어졌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울증이 심해서 당분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언젠가 차 안에서, 수술 얘기를 하던 그녀가 가방을 열어 약 봉투 하나를 잠깐 내 쪽으로 기울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결정은 그녀의 이름으로 전해졌다. 나에게는 그녀의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병원 이름도, 날짜도 알 수 없었다. 그 일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끝났다.
선배에게 털어놓자, 그는 처음 가 보는 바로 나를 불렀다. 단골이라는 바의 사장은 내 얘기를 다 듣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보나 마나예요. 정신 불안정한 애예요. 뭐 하러 불구덩이에 뛰어들어요.”
이튿날 혼자 그 바를 다시 찾았다. 사장은 화를 내듯 울먹였다. “나도 그런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못 내려놓더니 죽었어요.” 나는 그게 경고인지 고백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는 알았다. 그녀는 불구덩이가 아니었다. 불 속에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헤어졌다. 정확히는, 헤어졌다는 메시지가 왔다.
👺 분노 감지 · 😨 공포 감지 · 남은 시간 90초
나는 90초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어떤 손님은 90초보다 오래 머문다. 그래도 된다. 슬픔은 고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