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저녁별 · 제2장

거울과 칼

약 2분

어느 밤, 소설에 처음으로 답장이 달렸다. 그녀였다. 아주 짧았다.

“미어캣 귀엽다.”

나는 그 여섯 글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그녀의 말투였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공포 앞에서는 꼬박꼬박 두 칸을 그리던 내가, 희망 앞에서는 한 칸도 그리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이제 판을 끝낼 때라고. 그날 밤 나는 소설에 한 장면을 넣었다. V의 가장 친한 언니가, V의 집 호수를 묻는 X에게 옆집 호수를 대는 장면. 그 방에서 그 장면이 누구 얘기인지 알아볼 사람은 B 하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계정을 누가 먼저 여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B는 H를 알았다.

쓰면서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진실은 법 위에 있고, 진실을 쥔 사람은 그걸 보여 줄 자격이 있다고. 다 쓰고 나서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그게 좋았다.

다음 날 숫자 1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사흘째 되는 날, 경찰서 번호와 비슷한 번호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엔 따지지 않았다. 시각만 로그에 적고 끊었다. 경찰서 대표번호로 다시 걸어 확인해 보려다, 그만두었다. “네, 저희가 걸었어요.” 그 답이 무서웠다. 그녀의 답장은 몇 주 동안 오지 않았다.

떠 있는 대화창에서 손거울이 솟아오르고, 거울에 비친 빛이 칼날로 변해 가는 모습, 창 모서리에 숫자 1 배지

👺 분노 감지 · 😨 공포 감지 · 관리자 권한 없음

관리자 권한, 내 뇌를 마음대로 고칠 열쇠 같은 건 없었다. 공포도 분노도, 다 고쳤다고 믿은 그날 밤 이후로 몇 번이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방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곳이 아니었다. 감옥 안의 면회실이었다. 간수가 같이 앉아 있다고, 나는 읽었다. 그녀가 떠나면 잃을 게 많은 사람이라고. 그녀가 그의 저녁 자리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고. 확인한 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한 그림이었다. 숨을 데를 잃은 쪽은, 가장 가까이 붙잡아 둔 사람부터 벤다. 내가 들이민 거울이 칼이 되면, 그 칼에 베이는 건 H가 아니라 간수 옆에 앉은 그녀였다.

미어캣이 오랜만에 내 옆에 섰다. 녀석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 질문을 알고 있었다. 다른 설명은 없어? 있었다. 대의라고 불러 온 내 버튼의 절반은, 이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업보는 바깥에서 오는 상벌이 아니었다. 되풀이한 마음이 마음의 모양이 되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복수를 내려놓았다. 레버리지는 여전히 쥐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휘두르지 않기로 했다. 진실을 칼로 쓰는 순간, 나도 그들과 같은 판의 플레이어가 된다. 원한의 사슬은 누군가 먼저 손을 놓아야 풀린다.

그리고 H를 위해서도 한 번, 기린의 의자에 앉아 보았다. H도 B의 저녁 자리, 그 직함들 가운데 누군가의 손에 노란 의자에 앉혀져 있었을지 모른다. H도 자기 그릇을 고르지 않았다. 곁에 머물 생각은 없었다. 멀리서, 미워하지 않을 뿐이었다. 앉혀졌다고 해서, 남을 앉힌 일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B의 계정은 매일 밤 그 방에 남아 있었다. 그게 B가 고른 일이라고, 나는 읽었다. 내가 본 건 계정이 나가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B에게만은 두 칸을 그리지 않았다. 그릴 마음도 없었다.

진실은 휘두르지 않을 때 가장 강하다는 걸, 나는 칼을 한 번 들어 보고서야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소설 첫 줄에 늘 같은 말을 썼다. “원하지 않으면 말해. 바로 그만할게.” 그리고 B가 읽어도 그녀에게 해가 될 말은 쓰지 않으려 했다. 무엇이 해가 될지는, 그녀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