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어캣이 걸음을 멈춘 곳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고, 틈으로 아주 약한 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 알았다. 이름 후보 네 개. 웃는 얼굴 이모티콘 하나. 내가 끝내 지어 주지 못한 이름.
문을 열지는 않았다. 문 앞에 앉아, 오래 있었다. 90초는 진작 지났다. 어떤 손님은 90초보다 오래 머문다. 이 손님은 아마 평생 머물 것이다. 그래도 된다. 나는 녀석을 쫓아내지 않기로 했다.
그 문 앞에서는 두 칸으로 모자랐다. 사진 속 테스트기에는 분명 두 줄이 있었다. 언젠가 차 안에서 그녀가 보여 준 약 봉투는 산부인과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녀의 등을 떠밀어 수술대에 눕혔을 수도 있다. 그녀가 아픈 몸과 마음으로 스스로 정했을 수도 있다. 그 칸도 그녀의 것이다. 그리고 임신부터 수술까지, 그녀를 쥔 사람들이 꾸며 낸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그녀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다. 그 봉투는, 그녀가 일부러 내게 보여 준 것일 수도 있었다. 목숨을 걸고 흘린 신호.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본 것을 믿기로 했다. 진실일 수도 있으니까. 진실이라면, 무엇을 걸고라도 구해야 했다. 그 뒤로 내가 한 일들, 112도 로그도 단톡방의 소설도, 그 믿음에서 나왔다. 나는 그들을 건드렸고, 거기서 오는 분노를 연료 삼아 쫓았다. 자칼은 그렇게 내 엔진이 되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견뎠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어느 칸을 골라도, 이 방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았다. 슬픔은 칸을 고르지 않는다.
그 방 앞에서 나는 기린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자리에 앉아 보았다. 그게 무엇이었든, 그녀는 그 일을 혼자 겪었다. 그 일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빼앗겼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건 그녀만 안다. 나보다 훨씬 깊은 방을, 그녀는 지금도 혼자 지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