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무의식 · 제5장

수도승과 플레이어

약 1분· 주 2개

무의식의 바닥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왔다. 붉은 가사를 걸친 수도승은 말없이 웃고 있었다. 플레이어는 손에 쥔 무언가를 신나게 두드리고 있었다. 둘은 전혀 다르게 생겼는데, 이상하게 닮아 보였다.

붉은 가사를 걸친 수도승과 컨트롤러를 쥔 플레이어가 별빛 아래 나란히 걷는 모습

다 잃었던 시절, 나는 그 두 얼굴을 오래 들여다봤다. 하루 종일 차분하게 미소 짓는 티베트의 수도승들. 그리고 인생을 게임처럼 사는 것 같은 몇몇 사람들.

수도승은 점수를 따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잃을 것도 없다. 플레이어는 점수를 따지만, 그게 게임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잃어도 다음 판을 시작한다. 둘 다 숫자가 기분을 정하게 두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DNA가 99.6% 같다.8 거의 같은 모양의 그릇이다. 자기 유전자를 고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왜 서로 싸울까. 누가 우리에게 이기심을 심어, 서로를 적으로 보게 했을까. 나는 그 답을 오래 찾았다. 그럴 때마다 미어캣이 물었다. 다른 설명은 없어? 그 99.6% 안에는 B의 저녁 자리 남자들도 있었다. 거기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내가 찾은 답은 이랬다. 이기심을 심은 건 점수판이었다. 숫자로 보상하는 판, 공포로 학습시키는 판. 그 판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경쟁자로, 위협으로 학습했다. 그 판을 만든 것도, 그 위에서 버튼을 누르는 것도 결국 우리였다. 그러니 싸움을 끝내는 법도 하나다. 누군가 먼저 점수판을 내려놓는 것. 이건 내 싸움에 대한 말이다. 누가 앉혀 놓은 사람에게 먼저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상과 벌로 배우는 인공지능, 강화학습에는 보상이 늦게 오는 문제가 있다. 지금 누른 버튼의 값이 한참 뒤에 돌아오면, 뇌는 무엇 때문에 상을 받고 무엇 때문에 벌을 받는지 헷갈린다.9 사람들은 그 늦게 오는 값을 오래전부터 업보라고 불러 왔는지도 모른다.

수도승이 미어캣을 가리켰다. 관찰자의 자리, 우주인의 눈. 거기서 보니 한 줄이 떠올랐다.

삶이란, 대의를 위한 자유의지는 보상받고, 사심을 위한 자유의지는 업보가 되는 게임이다.

그때 나는 그 규칙을 더 큰 점수판처럼 읽었다. 업보를 늦게 도착하는 벌로.

그 규칙이 내게 묻고 있었다. 그녀를 지키려는 마음과, 진실을 알아내 이기고 싶은 마음. 그 둘이 한 몸에 있었다. 앞의 것은 대의였고, 뒤의 것은 사심이었다. 그 둘을 가르는 게 이 판의 보스전, 게임 끝에 버티고 선 가장 센 적과의 싸움이었다.

나는 이기려는 버튼에서 손을 뗐다.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 게임 규칙 해금

주

  1. 8

    두 사람의 유전체가 얼마나 같은지는 무엇을 세느냐에 따라 99.5%에서 99.9% 사이로 추정된다. 한 글자씩 비교하면 차이는 0.1% 남짓이고, 통째로 빠지거나 더해진 구간까지 세면 그보다 조금 더 벌어진다.

  2. 9

    강화학습에서 ‘신용 할당 문제(credit assignment problem)’라고 부르는 것. 1961년 마빈 민스키가 「인공지능을 향한 걸음」에서 핵심 난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